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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0일 한수진&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 금정문화회관두꺼비 메뉴 2020. 6. 14. 00:58
김포에서 아침에 비행기를 타고 내려온 바로 그날 저녁 금정문화회관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회를 보러 갔다. 날씨도 덥고 몸도 힘들었지만 못 보러갈 일은 아니라 생각했다. 게다가 사립 오케 주제에 R석이 무려 5만 원이나 하니깐. 한국에서 제일 좋은 평가를 사립 관현악단은 KBS교향악단인데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하면서 최고 7만 원 정도 받고 비싼 지휘자 모실 때마다 9만 원 정도까지 오르는 걸로 안다. 그런데 부산심포니가 5만 원?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금정문화회관으로 갔다.
금정문화회관 대공연장은 오랜 기간 설계와 예산 심의를 거쳐 리모델링됐는데, 음향적으로 가감도 약간 있었던 모양인지 소리가 명료한 편이었다. 사실 부산에서 비교대상이라고 해봤자 부산문화회관 대극장말고는 없고, 영남권으로 넓혀도 대구콘서트하우스와 통영국제음악당 정도인데 거기에 댈 수는 없으니까. 이렇게 말고는 처참한 수준이다. 아, 수성아트피아 용지홀보다는 사운드가 확실히 좋았다.
이렇게 블로그를 방치해놓고는 구태여 글을 쓰는 이유가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리지 않고 지휘자 본인과 지인들끼리 모여 너 잘났니, 너도 잘났니 하며 좋은 평가를 주고받는 꼴이 너무 아니꼬와서. 지휘자는 본인의 공연에 만족하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지원금을 지자체에서 타 갈 생각하지 말자. 과연 이런 수준의 공연이 지방이랍시고 열리는 게 옳은가? 그게 문제다. 나는 물론 그래도 있으면 좋다고 생각한다. 큰 기대 없이 보러 왔고 그 기대도 충족되지 않았지만 음악을 그저 좋아할 뿐이니깐. 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이 이걸 듣고 과연 클래식에 관심을 가질까? 좋아할 수 있을까. 이 공연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었을까.
무엇을 느낄 수 있었느냐 하면 바이올리니스트 한수진의 음색이 제1바이올린의 음악성을 압도할 정도였다는 사실일 것이다. 해설로 나오신 조희창 씨도 말씀하셨지만 한수진은 최근 유튜브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클래식 스타의 인기가 굉장하면 또 얼마나 굉장할지 모르겠지만 나도 호랑이에게 들은 바 있어 아 그 정도는 되는구나 하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한수진이 잘했다고 더욱 치우쳐 말하는 게 아니다. 오케랑 수준 차이가 컸다. 내가 다 듣고 집에 가던 길에 들려온 고등학생 두 명은 왜 한수진이 이런 오케와 공연을 하는 것인지 의문이 도통 해소되지 않는 듯 보였다. 나는 물론 이건 가혹한 처사라고 생각한다. 오케가 아무리 솔로와 격차가 난다 해도 한수진이 뭐 빅스타라고 마다할 게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이올리니스트 자신도 물론 유수의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경력을 적느라 앞으로 지방 중소 오케와의 협연 이력은 프로필에 적기 힘들지 모르겠지만 모든 사람이 가장 화려했던 지난 나날들을 포트폴리오 가장 앞쪽에 적기 마련이다. 게다가 한수진이 동년배 차이콥스키 콩쿨 수상자들보다 뛰어난 것도 아니니깐. 지금 당장 퀸앨리자베스 콩쿨 수상자나 차이콥스키 6위 안 수상자들의 콘체르토를 들어보라. 김동현만 해도 다시 수준이 다르다. 이건 콩쿨중심주의로 모두 환원시키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광고 빼고 연주만 들어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을 내용일 뿐.
공연은 1부와 2부로 나뉘어진다. 1부에선 오케인지 금정문회회관 측인지 현대음악 작곡가를 위촉해 곡을 하나 부탁했는지 세계 초연인 '금어기행'의 Overture가 연주됐다. 곡의 초기엔 The Great Legend의 분위기와 유사한 웅대하고 솔직한 구성이었는데, 구석구석에 한국의 민요를 넣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을까, 이도 저도 되지 않는 중반과 종반으로 김이 팍 샜다. 작곡가 분께선 직접 보러 오셨는데, 과연 연주에 만족하셨을지 궁금했다.
그렇게 서곡으로 시작된 연주회는 이 공연의 핵심,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넘어갔다. 바이올린 협주곡 하면 빠지지 않는 베토벤의 작품. 로망스 두 곡과 더불어 아주 아름다운 음색과 기교를 동시에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곡을 연주할 때 새어나오는 날카로움이 최소화되도록 조정하는 배려심이 있는 연주자를 좋아한다. 슈나이더한, 베를린필, 요훔 (1959, DG)나, 오이스트라흐, 프랑스 국립 방송교향악단, 클루이텐 (1958, EMI), 혹은 셰링, LSO, 이세르슈테트 (1965, DECCA) 정도. 이번 공연은 오케는 빼놓고라도 아쉽게도 솔로 주자가 그 기준에 맞진 않았다.
그래서 혹평을 주려는 건 아니다. 1악장은 미스 없는 훌륭하고도 조심스러운 출발이었고, 2악장과 3악장에서 본인의 진가가 드러나는 연주를 했고 연주자와 관객 모두 그걸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스타일이 완전히 그 두 구간에서 바뀌어버려 2-3악장에서는 미스가 상당했지만 유연하고 리드미컬해 좋았다. 오케와 미리 약속한 몇 아다지오 부분에서는 템포를 아주 느리게 끌고가 마치 지휘자가 두 명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겠지만 선장이 키를 제대로 못 잡으니 저리 꺼지라고 하고 대신 일하는 1등 항해사를 보는 느낌. 한수진의 단음 보잉은 굉장히 아름다웠다. 바로 이걸 느끼기 위해 베토벤 바이올린 협주곡을 듣는다. 속주 부분에서 여러 현을 한번에 소리내는 건 다소 삐끗한 면도 있지만, 3악장 론도는 정말 행복하게 연주했다. 보고 듣는 나도 행복해지는 느낌. 적는 지금도 부드러운 고양감을 느낀다.
아무리 크라이슬러가 더블스톱으로 곡을 변주하는 멋진 카덴차를 써놓고 수많은 바이올리니스트들이 죽어라 연습해서 그걸 짠 하고 잘 해낸다 해도 나는 큰 관심이 없다. 베토벤 협주곡엔 몇 가지 가슴을 울릴 만한 아주 아름다운 포인트들이 있고, 한수진은 그걸 아주 잘 해냈다. 정말 좋았다. 그런데 티가 없어야 할 2악장에서 시작하자마자 관악 삑사리가 들리질 않나. 바이올린 주자 누군가는 계속 현을 제대로 못 긁는지 정말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그런 악조건 속에서도 플루트와 클라리넷 (한 번 실수가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다)은 좋은 연주를 보여줬다. 비올라와 첼로도 좋았지만 사운드가 영 작았다. 내가 항상 공연을 오른쪽에 치우쳐 듣는데도 말이다.
여러 할 말이 많지만 오늘 또 바쁘니까 그만 접어야 하니. 사실 이렇게 악평을 적어뒀지만 또 이 뒤에 한 베토벤 교향곡 5번은 준수하게 연주했다. 내가 5번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도 이유겠지만 별로 와닿는 건 없었다. 그래도 미스는 1부보다 확연히 줄었다. 이건 확실하다.
공연이 끝난 후 왜 자신을 후원한 사람을 일으켜 인사시키는지 모르겠다는 관객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은 항의댓글을 쓰겠다고 결심하던데 실제로 행동으로 옮기지는 않은 듯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적는다.
금정문화회관 대공연장
부산 금정구 체육공원로 7
2020-06-10 19:35-21:30베토벤 탄생 250주년 기념: Dear 베토벤! 운명
* encore 내역을 추가했습니다.부산심포니오케스트라, 오충근 (dir.)
한수진 (Vn)Program
- 신동일 - 금어기행 Overture
- Beethoven - Violin concerto in D major, Op.61
- Bach - Violin Sonata No.1 in G minor, BWV 1001 중 Mov.1 Adagio
- Beethoven - Symphony No.5 in C minor, Op.67
오케 앵콜 두 곡도 있었는데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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