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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임이란 뭘까
    호랑이 메뉴/일상기록 2024. 11. 10. 21:51

    나는 꽤나 오랜 역사를 지닌 게이머다. 초등학생 때 메이플스토리를 시작으로 이후 수많은 게임을 해왔고 야자째고 PC방 가기, 밥 거르고 게임하기, PC방에서 밤새기 등등. 인생에 몇 없는 나의 일탈은 게임과 함께였다.
     
    내가 게임을 하는 루틴은 항상 같았다.

    어느날 꽂힌다 → 미친듯이 한다 → 시험기간이 다가와서 약간 이성을 차린다 →  그러나 정신 못차리고 게임대신 공부를 미룬다 →  발등에 불떨어져서 벼락치기한다 →  또 안하면 흥미가 식어서 '그래, 이참에 게임을 그만두자. 공부해야지!' 이러고 거리를 둔다 →  어느날 꽂힌다

     
    뫼비우스의 띠가 따로 없다.
     
    작년 연말부터 국시와 취업이라는 큰 이벤트가 연속으로 찾아왔다. 현생에 바빠진 나는 이번에도 게임을 멀리했고 노트북을 켤 시간조차 사라졌다. 노트북도 자주 부팅하지 않으면 시계가 마지막 부팅시점에 멈춰있는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게되었다. 게임을 하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실천에 옮기진 않았다. 나열해보자면, 사무용노트북이라 나의 위시리스트에 있는 게임을 실행하기는 불가능했고 설치 가능한 범위에서 게임을 고르자니 그 과정이 귀찮게 느껴졌다. 그래서 너무 심심하다 싶을때 닌텐도로 30분, 1시간씩 찔끔하다 잠들곤 했다.
     
    그런 내가 이번 주말을 게임으로 날려먹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고향에 있던 동생이 이번에 가까운 지역에 취업하게 되어 토요일에 집에 놀러왔다. 원래는 수원에 볼일이 있다며 갔다가 저녁시간에 맞춰 오기로 했는데 무슨 일인지 아침 6시에 일어나면 연락하라는 카톡을 나에게 보냈다. 알고보니 금요일 퇴근하자마자 수원에 가서 친구랑 밤새 PC방에서 게임하다가 첫차타고 출발했다는 것이다. 순간 진한 노스탤지어를 느꼈다. '나도 저런 시기가 있었는데. 게임을 향한 열정과, 체력과 그 모든것이 있었는데. 나는 어쩌다 놈팽이 동생 놈은 내 침대에 재우고 주말에도 알바를 하는 사람이 되었나.' 게이밍노트북을 빌리기 위해 왕복 4시간 거리를 다녀오는 모습, PC방에서 밤새고 까치머리로 와서 기름쩐내를 풍기는 모습.. 이 모든것이 내가 다시 게임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여전히 컴퓨터 사양의 한계는 존재지만 저사양모드로 기어코 다시 플레이했다. 4년전에 도전하다 어려워서 관둔 게임인데 뭐.. 무슨 게임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내가 다시 시작했다는게 포인트다.
     
    토요일 저녁 8시부터 시작했다. 그래도 출근관성이 때문에 밤 12시에는 결국 버티지 못하고 기절했다.
    일요일 아침 9시에 기상. 눈뜨자마자 커피한잔 내려마시고 다시 게임을 시작했다.
    오후 1시, 배가 고파오지만 일단 지금 진행하고 있는 에피소드는 마쳐야 개운할 것 같았다. 식사를 미뤘다.
    오후 3시, 더이상 참지못하고 컵라면을 먹었다. 요리는 시간낭비였다.
    중간중간 C에게서 연락이 왔지만 제대로 답장하지 못했다. 답장을 하는 순간에도 게임은 계속 진행중이어서 대화에 집중할 수도 없었다. 결국 난 게임을 좀 해야겠다라는 일방적 선언과 함께 잠수를 시작했다.
    오후 6시, 총 12시간 정도 플레이했다. 이렇게 밀도높은 플레이는 정말 간만이다. 잠시 침대에서 휴식을 취했다.
    오후 8시, 2시간 가량 잠들었다가 깼다. 평소의 저녁시간도 지났다. 냉동볶음밥을 렌지에 데워먹었다.
     
    현타가 찾아왔다.
     
    이틀동안 열심히 했는데.. 그래서 남는게 뭘까? 식사도 제대로 안하면서 게임을 했는데.. 이 엄청난 허무함은 뭐지?
    거의 한달만에 찾아온 집에있는 일요일이었다. 햇살도 좋았고, 오래만에 청소해서 집도 마음도 깨끗했다. 이렇게 좋은 휴일을 나는 방구석 모니터만 보면서 보냈다. C랑 연락도 제대로 안했다. 이 모든 것을 날릴만큼 가치있는 시간이었나? 정말 모르겠다. 새로 산 소설도 있고, 공부하겠다고 산 약학서도 있는데.. 더 퀄리티있게 보낼 수 있는 시간을 허무하게 날려버린게 아닐까?
     
    항상 데스크탑을 사고 싶으면서 한편으로는 내가 게임을 오래할까 라는 의문이 있었다. 그동안은 시험기간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반강제로 멀어졌던 것인데 이젠 그런 장벽도 없다. 그럼 진짜 한 게임을 꾸준히 할까? 스스로 궁금했다. 이틀을 내리 플레이에 쏟아부으면서 답이 나왔다.
     
    안녕 과거의 열정적이었던 나. 이제 감성이 이성을 이기지 못하는 나이가 되었나보다. 무아지경의 즐거움보다 발전없는 모습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졌어. 그래도 언제나 그리울꺼야. 분명 다음에도 또 찾을거야. 그때는 지금보다 순수하게 즐길 수 있도록 노력할게.
     
    다시 또 씻고, 출근을 위해 잠들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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