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C: 점·선·면
    Tale 2021. 1. 1. 01:11

    말도 안 된다. 그게 말도 안 되는 게 아니라, 제목 앞에 써야 하는 내 이니셜이 뭔지 기억이 안 나는 걸 말하는 것이다. 얼마나 오래 글을 안 썼으면 이 사단일까. 한 해를 돌아보기 앞서 시작부터 이 모양 (circumstances)이다. 그 정도로 무관심했다라고 치부하고 넘어가기엔 곤란한 구석이 많다. 그렇게 매듭짓지 않고 대충 회피해버리면 똑같은 일이 또 벌어지니까. 까먹은 일만 말하는 게 아니다. 내 인생의 궤적을 설명하는 데에도 똑같이 적용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인해 정신건강을 해친 수많은 케이스가 떠오른다. 올해의 화두는 역시 코로나와 그 영향일 것이다. 세계화의 반동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서로의 관계성에 대해 다시 고민하고 논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한 사회에 대한 의구심이 일개 바이러스 따위의 회의적인 시선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관계가 흔들리고 축소되자 붕괴되자 사람들은 이상한 행동을 보이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우울해 하기도, 또 어떤 사람은 더욱 남의 시선에 신경쓰기도 했다. 그런 모든 변화의 기점이 매우 단순한 매개체라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다소 묘한 감상에 빠져든다.

     

    나는 어땠을까. 나는 어떤 카테고리에 들어갈까. 나도 역시 일년 내내 축 늘어진 기분으로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그런 것치고는 대단히 활발히 움직이기도 했다. 엄청나게 먼 거리를 얼마나 자주 왔다갔다 했던가. 얼마나 문화생활을 열심히 영위했는가. 나는 수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세상을 직접 경험했다. 이때의 직접은 본질적으로와는 조금 다르다. 단지 직접일 뿐이다. 그런 행위의 기저에 별다른 철학 같은 게 존재하지를 않았다. 단지 점에서 다른 점으로 움직이곤 했던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수의 점을 포집해서 분류하고 정제해 목록에 두고는 생각도 거리낌도 없이 마음가는 대로 그 점들 사이를 오갔다. 이러니 면이 만들어질 수가 없었다. 올해처럼 많은 점이 내 평면 위에 그려진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여전히 차원이 높아지기는커녕 결과물의 중간 과정조차 도출해내질 못한다. 이는 언젠가부터의 내 모습과 통하는 지점이 있다. 내가 앞으로 묘사할 선은 조금 더 세밀해야만 한다. 어떤 식으로든 전체적인 양상을 그려놓고 그 틀 안에서 움직여야 한다. 이것은 그래야만 하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그렇지 않았던 경험으로부터 체득하고 성찰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결론이다.

     

    나도 작년(이 말이 우습다) 1월에 세웠던 계획을 좀 돌아볼까. 444 km로 문턱을 높인 작년 러닝 목표는 이루지 못했다. 의지보다는 몸상태의 문제였다. 10월 초 무릎을 다친 뒤로 그 어떤 진전도 없다. 뛴 거리가 늘어야 할 텐데 그에 앞서 아직도 무릎이 낫질 않았다. 무릎 놈이 언제까지 이럴 예정인지에 대해선 감을 잡을 수조차 없다. 다만 5 km 소요시간 기록은 너끈하게 달성했다. 몇 초더라. 아무튼 25분대에 진입했다. 이게 문제였을까. 원인이 뭔지 도통 알 수 없는 가운데 저 기록을 갱신하는 것은 먼 미래로 미뤄졌다.

     

    책 100권 정독. 턱도 없는 개소리에 불과했다. 어떻게 3년 동안 천 권을 읽던 사람이 이렇게 변할 수가 있을까. 책이란 것은 결국 시간이 있어야 읽게 마련인데 그 시간을 다른 데 쓴 것이 본질적인 문제일 것이다. 당연히 도서 관련 다른 모든 목표도 지키질 못했다. 다 못 지켰지만 그중에서도 알랭 로랑 책을 아직도 못 읽었단 건 참 한탄스러운 일이다.

     

    공부. 그나마 입을 열 수 있는 건 바로 이 부분이다. 목표에 나열된 것들을 충실히 해내진 못했지만 내 개인의 기량에 영향을 크게 줬던 이번 여름은 분명히 좋게 평가할 만하다. 시작으로서는 멋졌지만 그게 이어지질 못했고 지금 비실거리고 있다는 건 아니나 다를까이지만 그런 식으로의 가장은 이제 질린다. 방향은 잘 잡았지만 역시 점을 플로팅한 것의 연장일 뿐이었다는 것도 아쉽다.

     

    블로그의 어쩔 수 없는 방치는 연초 열심히 쓴 글을 어처구니 없는 덮어쓰기 실수로 다 날려버린 뒤 좋은 흐름에서 밀려 내려왔으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렇게 핑계를 대고 시팓. 일기는 꽤 쓴 편인데, 반면 캘린더 정리에서 손을 뗀 것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내가 해놓고도 결론을 내지 못했다. 강박증이기도 하지만 아깝기도 하고. 그래도 시간이 나면 여행 일기는 다 쓰는 게 좋다고는 아직도 생각한다. 나는 시간이 없으니 호랭이가 소재를 다 떠올려야 한다.

     

    새로운 데이터가 위와 같았다면 기존 데이터의 정리는 어땠을까. 일단 Evernote 글을 정리하기 위해 분류를 새롭게 나눴고 우선순위를 할당해 꽤 많은 글을 내 걸로 만들 수 있었다. 에버노트가 버전 10으로 올라가면서 쓰레기를 프로그램이랍시고 내놓자 다른 플랫폼으로 갈아타 잘 쓰고 있기도 하다. Firefox Favourites도 꽤 분류한 편이다. 기존 데이터가 이런 것만 있는 건 아니지. 내 지식은 어떻게 됐나. 물을 게 뭐 있나. 퇴보, 퇴보, 퇴보를 거듭하고 있다. 언어, 수학, 물리학, 화학. 빠질 게 하나도 없다. 빠지는 것 없는 사람이 아니라 퇴보 그룹에서 빠지는 게 없다. 해봤자 점이니 퇴보는 아니라고 위안 삼아봤자 소용이 없다. 시간축을 고려해 너른 시선에서 들여다 보면 분명히 퇴보가 맞다.

     

    하지만 뭐라고 했던가. 칸딘스키는 모든 건 점으로부터 시작된다는 대단히 중의적인 표현을 했다. 그 말을 어떻게 해석하는지는 내게 달려 있다.

    'Ta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릎 문제 타임라인  (0) 2021.01.02
    T: 언제 흘러갔나 2020 그대여  (1) 2020.12.31
    알뜰폰 3년째 쓰면서  (0) 2020.12.14
    노트북 뽐뿌를 해결해서  (2) 2020.12.01
    C: 20202020202020202020  (0) 2020.01.19

    댓글

Designed by Tistory. Courtesy of Asan City for the header 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