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하와이 13일차 - 토'
    호랑이 메뉴/하와이 2023. 8. 25. 14:46

    나는 왜 또 이 새벽부터 등산을 결심했을까. 오늘은 다이아몬드 헤드에 갈 예정이다. 며칠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이아몬드 헤드에 다녀온터라 같이 갈 사람이 없을 것 같아서 포기했었는데 인원이 구해졌다. 해를 피하기 위해 일찍 출발.

    오늘도 다니다 어플을 이용했다. 첫회 무료이용을 30명가까이 되는 인원이 돌려쓰니 세상편하다. 다이아몬드 헤드 어디에서 내려줄까 묻는 기사님의 말씀에 주차장이니 뭐니 애들이 말했는데 한마디로 정리했다. '그냥 차로 들어갈 수 있는데까지 들어가주세요' 기사님께서 듣더니 현명하다며 웃으셨다. 이게 바로 20대 후반의 짬밥.. 도착하니 눈앞에 우리가 정복할 녀석이 보였다.

    그리고 지옥문이 열렸다.

    해를 피하기 위해 일찍 트래킹을 시작했는데 점점 계단을 따라 해가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의도치않게 타임어택이 생겨 후들거리는 다리를 어떻게든 움직여야했다. 한발짝 내딛을 때마다 정신의 일부가 뜯겨 나가는 기분이다. 뒤를 보면 또 풍경은 좋다. 다만 해가 쫓아와서 다시 고개를 돌려야할 뿐.

    기어이 해에게 따라잡히지 않고 꼭대기에 도착했다. 한숨 돌리자고 바위에 걸터 앉았는데 한 직원이 스몰토크를 시전해왔다. 지금이 하와이가 가장 건조한 시기라 나무들이 바싹 말라있다고 한다. 다른 계절에 오면 푸릇푸릇한 산을 볼 수 있다고. 등산하는 내내 직원처럼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건축자재를 들고 오르내리는 모습을 보아서 질문했더니 계단을 아직 더 연결하는 중이라고 한다. 그러면서 본인은 등산하는데 20분밖에 안걸린다는 믿지 못할 이야기도 했다. 어이없는 표정으로 있으니 같이간 친구들이 IMPAC에 있는 David도 20분이랬다고 했다. 현지인이 매일 오르내리면 그럴 수 있나보다.

    바람이 엄청나다. 시원해서 좋다.

    그치만 나는 현지인이 아니다. 이번에는 황천행 길이 열렸다. 다시 사진만 봐도 아찔하다. 누군가 나에게 다이아몬드 헤드에 대해 묻는다면 난 절대 가지말라고 할 것이다. 세상천지에 어느 멍청한 놈이 산을 둘러 올라갈 생각을 않고 꼭대기까지 직선으로 철도를 놓았단 말인가. 그리고 그걸 올라가고 있는 이 사람들은 의학적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들이 분명하다. 완등했을 때의 풍경과 나의 관절이 감히 비교대상이 될 수 있나? 끝없는 계단을 오르내리면서 무릎 연골이 마모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늙어서 관절염으로 고생하기 싫으면 무조건 피해야하는 장소다.

    내려 오는 길에 총탄 소리가 계속 들려서 주위에 군부대가 있나 했는데 알고보니 사격장이 있었다. 사격에 관심이 많은 군필출신 레드빈이 자기도 미국에서 사격장을 가보고 싶다며 칭얼거렸다. 그럼 가라고 했더니 너무 비싸서 못가겠다고. 한국에서는 총기의 종류를 본인이 정하고 정해진 횟수만큼 쏘는 방식인데 미국은 모든 총기류를 세트로 묶어놔서 하기 싫은 것도 해야한다고 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이유는 한국에 없는 샷건이 있기 때문이란다. 그렇구나~하고 들어줬지만 난 당장 내 두피를 태우고 있는 햇볕이 더 신경쓰였다. 미안 레드빈..

    하나우마 베이는 다이아몬드 헤드 바로 옆에 위치해서 세트로 걸어가기 좋았다. 입장하려면 예약은 필수인데 학생증이 있는 우리는 residents라 그냥 통과할 수 있었다.

    residents라도 처음 방문하는 사람은 해양 생태계를 보존하기 위한 짧은 교육영상을 들어야한다. 산호는 밟지 말고 쓰레기는 버리지 말고 등등.. 매우 짧다.

    입구에서 바다까지는 길을 따라 좀 내려가야한다. 사람들을 위해 카트도 운영하고 있는데 길이 짧아서 금방금방 오더라.

    오후의 일정도 있고 숙소에서 멀기도 해서 우리는 발만 담그고 돌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바다를 보니 아쉬운 마음이 가득했다. 수영복을 챙겨와서 등산하며 땀흘린 몸을 바다에 던졌어야하는데. 산호는 뭐.. 그렇게 특별한지 모르겠고 풍경은 아름다웠다.

    고기가 보인다

    한 20분정도 머물렀을까. 시간이 촉박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하나우마베이를 빠져나왔다. 숙소로 돌아가려면 버스를 타야하는데 정류장까지의 거리가 꽤 멀다.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을 걷고 있으니 이걸 사람이 가도 되는지 몰라 무서웠다. 내려가는 길이 아름다워 한 컷 찍었다. 중간에 뷰포인트에서 구경도 했다.

    정류장에 왔는데 그늘 한점 없는 땡볕이다. 사진에 보이는 콩만한 그늘에 모여서서 버스를 기다렸다. 역시나 하와이안 타임.. 구글맵에서 8분뒤에 온다는 버스가 20분이 넘도록 오지 않는다.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더워서 힘들뿐이지 급한 건 없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버스에서 기절했는데 다른 친구들에게 촬영당했다.

    숙소에 도착하기 전에 내려 마구로스팟에 들렀다. 포케를 포장해서 걸어갈 예정이다. 속이 안좋아서 small 사이즈를 시켰는데 먹고보니 양이 적다. 여성분들은 M, 남성분들은 L사이즈를 추천한다. 맛은 매우 훌륭했다. 학생들 사이에서 마구로 열풍이 불었는데 거짓된 인기는 아니었다. 나중에 현지인이 말하기에 와이키키에서 가장 먹을만한 포케는 마구로스팟이라고! 소스는 rainbow를 추천한다. 깔끔한 맛은 아니고 마요네즈, 스리라차 등등 다 섞인 소스다.

    오늘은 와이키키 명품거리에서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하루만 진행되는 이 축제의 정체는 여전히 파악하지 못했다. 노점들이 깔리고 하와이안 레게 공연이 진행되었다. 길거리에 울려퍼지는 노래가 흥겹다.

    스투시를 팔길래 짝퉁인줄 알았는데 진퉁이었다. 정품매장에서도 물량이 없어 못 팔기 때문에 플미를 붙여서 파는거라고;

    날이 더워서 파인애플 주스가 인기폭발이다. 맛있다고 퍼마셨는데 반정도 먹고나니 혓바닥과 식도가 녹은 기분이다. 파인애플의 단백질 분해 효능은.. 확실했다.

    바나나빵. 폭신폭신 몰랑몰랑 맛있었다
    오후 4시경의 인파. 이때까지만 해도 다닐만 했다.

    혼자 축제거리를 헤매다가.. 몇바퀴 돌고나니 할게 없어 카이마나비치로 향했다. 와이키키해변에서 카이마나해변까지 가는길은 정말 최고의 산책로다. 언제가도 질리지 않는다. 혹시나 오늘은 물범이 있을까하는 기대를 안고 갔지만 오늘도 없었다. 남들 다 봤다는데 왜 나만 못보는걸까. 흑흑.

    나처럼 홀로 오전 일정을 끝내고 놀고있던 지츄를 만났다. 3조에 해산물을 싫어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제발 새우좀 먹고싶다는 의견에 따라 갈릭버터새우꼬치와 하와이안닭꼬치(무슨 차이인지는 모르겠다)를 주문했다. 10$를 추가하면 팟타이를 같이 준다는 말에 냉큼 추가. 가격은 창렬이지만 기분내서 맛있게 잘 먹었다! 따로 먹을 곳이 없어 경찰서 앞의 돌에 주저앉아 먹은건 안 비밀이다.

    와이키키해변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을땐 모아나 서프라이더 리조트에 가면 된다. 저녁시간에는 처음 들어가봤는데 라이브 피아노공연을 하고 있었다. 저 옆 테이블에 앉아 와인 한잔하면서 들으면 천국이겠다.

    밤이 될수록 사람이 증식했다. 줄을 서지않으면 길을 지나갈 수 없고 한번 낑기면 빠져나갈 수도 없었다. 노스쇼어에 놀러갔던 3조 사람들과 만났다. 처음에는 스테이크를 사서 재재와 나눠먹고 싶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허기도 사라지고 피곤함이 더 커서 그냥 안먹기로 했다. 쉐이브드 아이스를 차선으로 골랐지만 이미 주문마감이라 포기. 다리가 너무 아파서 건강 어플을 확인해봤더니 2.7만보를 걸었다고 애플이 알려줬다.

    릴리코이에 도른자로서 릴리코이 버터 수제잼을 지나치지 못했다. 재재와 하나씩 구입하긴 했는데... 이렇게 상큼한 잼을 사실 어디에 발라 먹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일단 식빵에 무작정 바르고 볼 예정. 다른 친구는 다 맛있다면서 혼자 무슨 잼을 6개를 사가더라. 유통기한 있는데 언제 다 먹으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몸도 지치고 정신도 피로하고 오늘은 순탄하게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저녁에 사건이 터졌다. 주어진 의무를 다하지 않고 본인의 놀 권리만 챙기는 어린녀석과 숙소가 떠나가도록 언성을 높이며 한바탕했다. 사실 조용히 이야기할 수 있었지만 논점을 흐리는 행태때문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면박을 주며 쪽팔리고 정신차리라는 의미도 있었다. 내가 여기서 제일 고참이기에 망정이지 어쩔뻔. 방으로 돌아간 후에는 다들 나에게 괜찮냐며 연락하더라. 앙심을 오래 품는 타입은 아니어서(예외가 있긴하다)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는 별 생각 없었다. 그저 또 문제를 일으키지 않기만을 바랐을 뿐이다. 이렇게 파란만장한 13일차가 종료되었다.

    '호랑이 메뉴 > 하와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와이 12일차 - 금'  (0) 2023.08.16
    하와이 11일차 - 목'  (1) 2023.08.15
    하와이 10일차 - 수'  (0) 2023.08.13
    하와이 9일차 - 화'  (0) 2023.08.08
    하와이 8일차 - 월'  (0) 2023.08.06

    댓글

Designed by Tistory. Courtesy of Asan City for the header fo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