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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펄 (purr): 첫 번째
    음식탐닉 2019. 3. 4. 22:40

    두껍 씨는 모험을 좋아한다. 언제나 가던 곳도 새로운 길로 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증후군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이 바로 두껍 씨다. 그 사실을 잘 아는 호랑 씨는 하루는 시도 때도 없이 찾는 온천천 카페거리 부근을 새로운 길로 찾았다. 그러다 발견한 새로 연 듯한 레스토랑, purr. 처음 보는 말이라 뜻을 찾아 보니 "고양이들이 만족스러울 때에 갸르릉거리는 것"을 의미한다.


    호랑 씨의 놀라운 촉에 관해서는 더 설명이 필요하다. 하필이면 호랑 씨가 좋아하는 이탈리안 레스토랑. 다음주 월요탐방은 여기로 할까, 가볍게 그렇게 정했다.



    그리고 오늘, 월요일이 되어 배가 고파진 둘은 근처에서 놀다가 어슬렁어슬렁 저녁을 먹으러 향했다. 하지만 막상 purr 앞에 도착해서는 약간 고민했다. 저번에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에는 단순히 운명이다 싶어서 서로 OK했던 것이지, 가격이 어떻고 맛이 어떻고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었으니 불안감이 찾아와 둘을 조용히 감싸안았다.


    더욱 더 입장을 고민스럽게 만들었던 요인은 바로 내부 공간 (space)이었다. 가게 안 공간 (room)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고, 가게 안 공간의 공간 (void)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안이 정말 휑했다. 테이블 간격도 넓고 입구쪽에는 아예 테이블을 배치해두지 않아 시각적으로 광활함이 그대로 다가왔다.


    그 때문에 두껍 씨는 정말 고민했고, 특히나 불안해 했다. 심지어 둘이 갔을 때에는 마침 테이블에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호랑 씨가 용감하게도 들어가자고 한 덕택에 행복한 저녁을 보낼 수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용기를 요구한다.



    사실 돌이켜보면 입구 쪽에 테이블을 배치하지 않은 이유는, 문을 열 때 생길 수 있는 소음이나 바람 때문일 테고, 테이블간 간격은 넓을 수록 좋은 법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배려심이 엿보이는 대목이지만, 말은 참 좋지만 그래도 직접 보면 휑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그 덕분에 음악은 에코가 먹어서 너무 크게 잘 들렸다. 칸막이라든지 테이블을 조금 더 넣든지 하는 대안이 필요해 보인다.


    전체적인 미감이나 인테리어는 깔끔했다. 요즘 유행하는 깔끔하고 아늑한 느낌까지 잡아주는 화이트 앤 브라운. 이런 옅은 갈색에 항상 따라오는 풀들. 힙스터들이 가장 좋아하는 심플한 디자인인데, 그들과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천장 도색까지 깔끔히 완수했다는 점. 천장을 시멘트가 그대로 보이게 방치하는 인테리어는 왜 요즘 유행하는지 모르겠다. 위생 관념에 전혀 신경쓰지 않는 듯해서 시선을 곱게 보내기 어렵다. 다시 둘러보면 구석구석 섬세하게 꾸며져 있다.


    다만 왜 주류 냉장고를 저렇게 보이는 곳에 배치했는지 모르겠다.


    purr이 적힌 그 위에, 수줍게 cafe까지 적혀 있는 게 흥미롭다. 커피는 맛있을까.


    2월 19일 개업이라고 하니, 우리가 딱 2주째를 장식하는 셈이다. 셰프는 둘이고, 여성 한 분이 접객과 보조를 담당하는 듯했다. 약간 서투르시지만 그런 풋풋함도 좋은 인상으로 다가온다. 그 분의 오빠가 셰프, 셰프끼리는 친구라는 듯했다.



    들어오기 전 조그마하게 A4지에 인쇄되어 벽면에 붙어 있던 가격은 확인하고 들어왔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지갑사정을 고려했을 때 좀 비싼 게 아닌가 싶었다. 맛있으면 좋겠다, 서로 그리 생각하면서 파스타 하나, 리조또 하나를 주문했다. 특이하게 샌드위치도 팔고 있다.


    내부 디자인에 걸맞게 주류도 가볍다. 테이블 와인도 취급하지 않는 대신, 몇 가지 병맥주를 선택할 수 있다. 커피나 티는 비싸지 않은 편인데, 음료만 마시는 것도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1. 쉬림프 알리오올리오 13,000원
    2. 모짜렐라 토마토 파스타 13,000원
    3. 트러플 머쉬룸 크림 리조또 16,000원



    그릇의 테두리까지 우드 톤으로 꼼꼼하게 처리했다


    처음에 가게에 들어온 순간엔 신장 개업의 냄새가 났는데, 주문하고 10분쯤 있으니 버티기 곤란한 향이 저편에서 흘러왔다. 아 힘들다, 생각하는데 그때 도착했다.



    쉬림프 알리오올리오. 직접 만든 듯한 빵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친절한 "알리오올리오 소스에 찍어 먹으면 맛있어요." 한 마디와 제공된다. 사진상으로 왜인지 감자와 흡사해 보이는 이 빵은 실제로 보면 조금 더 빵에 가깝다. 식전 빵이야 크게 다르지 않지, 하면서 한 입 먹었더니.


    정말 너무 맛있었다. 혹시 베이커리 아닌가? 카페 말고 베이커리라고 적혀 있었던가. 디저트엔 머핀밖에 없었는데, 이 빵의 메뉴 추가가 긴요하다. 빵이 이 정도면 틀림없이 샌드위치 메뉴도 장난이 아닐 것이다.



    플레이팅이 예쁜 편인데 사진이 생각보다 잘 나오지 않아 음식에서 풍기는 향을 참으며 고통의 셔터 시간을 보냈다. 파스타는 평소에 접하던 알리오올리오보다는 약간 스파이시했고, 면은 얇은 편이었다. 부드럽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중간의 면이 식감을 북돋았다.


    알리오올리오에 올려진 새우는 살짝 튀겨진 듯해 껍데기조차 씹는 맛이 있다며 호랑 씨는 오늘도 새우 찬양의 노래를 불렀다. 그 오일에 새우를 조금 익혀 붉은 색감과 맛을 만들어낸 것이 아닌가 하며 열띤 자세로 부연했다. 편마늘은 아주 적당한 정도로 구워져 있었고 너무 알싸하지도 너무 밍밍하지도 않은 좋은 상태로 입안에서 녹았다.



    문제는 바로 이 리조또였다. 디시에 담겨 눈앞에 오기도 전부터 미친듯한 향으로 우리를 공격해 오던 바로 그 음식. 안쓰러운 후각의 소유자 두껍 씨는 냄새의 출처를 찾으며 킁킁거렸고, 호랑씨는 진심으로 안쓰러운 듯 쳐다보았다.


    한 입을 먹은 호랑 씨. 맛있다. 버섯의 향과 풍미가 일품이라며 잇따라 찬사를 보낸다. 본디 호랑 씨는 크림 파스타나 크림 리조또는 쉽게 질린다며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건 잘 먹었다. 호랑 씨가 파스타에 집중하는 동안 양서류 하나가 리조또를 작살내놔서일까, 양이 많지 않아서일까, 호랑 씨는 끝까지 질리지 않고 잘 먹었다. 그에 놀랐다.



    버섯과 트러플 오일이 참 잘 어울렸고 서로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 버섯에, 오일에, 크림이면 쉽게 질릴만도 한데, 외려 풍미가 극대화될 줄이야.


    이 리조또는 비주얼이 맛에 못 미친다는 것은 고민해 볼 거리이다. 심지어 사진으로 보면 맛이 더 설득력 없게 들리니, 맛에 대한 표현과 평가가 웬만큼 알차지 않고서야 그 본연에 대해 전달하기 힘들다.



    앞서 언급했듯이 처음엔 파스타와 리조또 하나씩만 주문했었는데, 사정상 부득이 오늘이 첫 끼였던 두껍 씨 때문에 플레이트를 하나 더 추가했다. 크림, 오일 하나씩 먹어봤으니 이번엔 토마토 베이스.


    원체 토마토의 신맛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둘은 모짜렐라 치즈가 부드럽게 중화시켜주는 토마토를 먹고 놀란다. 토마토는 작지 않게 조각나 있어서 과육의 씹는 맛 또한 느낄 수 있다. 치즈 층은 얇아서 부담도 없었고 한편으로는 꾸덕함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먹다 보면 조금은 짠 듯도 하다며 호랑 씨는 말했지만, 한 접시 또 깔끔하게 클리어. 다 먹고 돌아오면서는 버섯의 향이 심장에 박혔다며 연신 즐거운 듯 말했다. 생리통에 온종일 고통받던 호랑이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에 겨워 마구 날뛰는 기분 좋은 광경을 보며 돌아갔다.


    원래는 월요일 휴무였다고 한다. 지금은 일요일. 진심으로 다행인 점이다. 샐러드 메뉴가 없는 건 조금 아쉽다. 비용이 아깝지 않은 맛이기에 즐겁게 재방문할 의사가 가득하다. 그리고 재방문, 여어어러 번 한 뒤 글을 갱신했다! 인스타그램은 여기로. 여기에서 purr로 이름을 지은 이유를 알 수 있다. 냥냥.



    부산 동래구 온천천로453번길 23-2
    양식 - 이탈리안. 11:30-21:00 (L.O. 20:30). 월[각주:1]요일 휴무.
    브레이크 타임 15:30-17:00.

    주차 불가


    1 ★★★★☆ (4.0)
    2 ★★★☆☆ (3.4)
    3 ★★★☆☆ (3.3)
    4 ★★★★☆ (3.5)

    *: 1 맛, 2 서비스, 3 분위기, 4 가성비


    1. 일요일 휴무였다가 2019년 4월 1일부터 월요일로 바뀌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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