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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 여행, 그 두 번째 (02): 늦었다
    돌아다니며 2020. 1. 14. 0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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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빵의나라 – 부산역 – 노블스테이 – 르폴뒤 – 우손 갤러리 – 대구콘서트하우스 – 삐에뜨라.

     

    공교롭게도 우리가 대구로 출발하는 16일은 그가 오전 내내 서면에 있어야 했던 관계로, 항상 출발하던 구포역보다는 부산역에서 가기로 했다. 나는 집에서 부산역까지 가야 했으니 시간이 꽤 걸렸다. 부산역을 출발지로 택했으니 잘 가지 않는 부산 구도심에서 이런 기회에 뭐라도 챙겨 먹고 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서 부산광역시가 명품빵집으로 선정해둔 곳 중 하나인 '빵의나라'에 가기로 했다. 내가 여기에 들렀다 역으로 가는 동안 그는 역에서 어묵을 사 먹는다. 부산광역시는 2013년에 시내 명품빵집을 어느 정도 선정한 이후 그 뒤 별 활동이 없다. 부산역이 있는 동구에서는 딱 두 곳이 선정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빵의나라'이다.

     

    후줄근한 부산 1호선 부산역과 대비되는 모던한 무빙워크

     

    '빵의나라'에 입국해 또띠아 하나랑 몽블랑을 사서 역으로 가 그를 만났다. 그가 어묵 파는 곳 앞에 있댔는데, 어느 어묵인지 몰라 살짝 헤맸다. 언제 생긴지는 모르겠지만 역 건넛길에서 지하로로 역까지 연결하는 공사가 끝나 있었다. 지하에는 공항에서나 보던 평지 무빙워크가 있었고, 그 위엔 신공항은 우리 거! 뭐 그런 느낌의 현수막이 붙어 있어 곧 갈 대구와의 신경전을 벌이고 있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기차를 기다리며 빵을 흡입한 우리는 타고 나서 빠르게 저녁을 어디서 먹을지 확정하고 이내 쉬기로 했다. 그는 잔다 하고는 정말 금방 자버렸다. 우리가 고민 끝에 고른 곳은 '삐에뜨라 (Pietra)'로, 양식 범위 내에서 고르기로 했는데, 내가 우연히 작년에 핀을 해둔 곳이었다. 대구에서 식사를 할 곳으로 선정해둔 곳은 올해 한 게 전부였는데, 거기에 유일하게 해당하지 않은 곳이 거기였다.

    예약해둔 ITX를 타고 동대구역에 내리니 오후 세시가 곧이었다. 원래는 급행1 버스를 타고 숙소인 노블스테이 호텔로 가려 했는데 자다가 좌석에 폰을 두고 온 호랑이의 기행으로 좀 늦는다. 전반적으로 대구버스들 배차 시간이 길기 때문에 지하철을 타고 중앙로역으로 간다. 어차피 급할 건 없다. 열차는 몇 번이고 곧 출발한다고 급해 했던 것 같다. 하마터면 그 혼자 서울 방면으로 가버릴 뻔했다.

    대구 지하철 1호선에 역내에 입점해 있는 동대구역 알라딘에 혹해서 들어갔다가, 동성로점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깨닫고 두꺼비는 금방 나온다. 알라딘 표지판만 보고 동성로인 줄 알았다. 거기 가려고 지하철역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은 표지판을 보는 순간 잊었다. 호랑이는 한심하게 쳐다본다.

    이번엔 정말로 동성로에 도착해 알라딘에 들른다. 아차, 그런데 여기서는 실수인지 swarm에 체크인을 안 했다. 어딜 가든 항상 하는데. 여기서만 팔고 있는 절판된 책을 구해 기분 좋게 호텔로 가 체크인.

     

     

    유명한 동성로 노보텔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는 노블스테이 호텔. 웅장한 인테리어인데, 어딘가 부조화한 느낌이나 벽면의 대리석을 두드렸을 때 빈 소리가 나는 것이 과연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올 수 있었던 행운이 납득된다. 여기저기의 사소한 오타는 귀엽기도 하지만 격을 높이진 않는다. 어리숙한 직원이 체크인을 돕는다. 우리는 불쾌하진 않지만, 관리인처럼 보이는 사람은 약간 답답한지 이것저것 옆에서 가르쳐 주는 모양이다. 그러면서도 숙박객 니즈를 파악하려고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객실층 복도에 걸린 그림들은 마음에 든다. 보통은 호불호가 갈리기 힘든 디자인이다. 이렇게 여러 군데에서 보통의 취향에 맞춰 가고자 한 흔적이 보인다. 가벼운 멜로디로 흘러나오는 산뜻한 곡들과 과하게 밝은 조명이 방까지 우리를 안내한다.

     

    방 안은 일반적인 (그리고 깨끗한, 개업한 지 두 달도 안 되어서 더더욱 깨끗한) 비즈니스호텔의 모습이다. 침대 위 디퓨저나 놓을 수 있을 법한 수납 공간을 손만 뻗어 슥 긁어 본다. 먼지가 없다. 화장실도 깨끗하다. 욕조가 없다는 게 조금 특이한데, 별다른 불편함을 주진 않는다. 물은 잘 나오고 물 온도를 맞추는 조작 방식은 특이하다. 변기와 샤워시설은 바로 근처에 붙어 있는데, 자그마한 반투명 유리막이 있긴 하지만 일단은 같은 공간에 위치한다.

    아웃렛도 많아 포트를 마음껏 꽂을 수 있다. 다만, 침대 바로 옆에는 없다. 난방은 온돌과 에어컨 두 가지 방식으로 조절할 수 있는데, 온돌은 기본적으로 틀어져 있고 중앙에서 컨트롤한다. 에어컨은 사용자가 원할 때 조절하면 된다. 모든 방에는 공기청정기가 있는데, 사실 방에 들어가 카드를 넣는 순간 우우웅 하고 소리가 나는 걸 느낄 수 있다. 구석에서 자기 주장을 하는 삼성 공기청정기이다. 우리 둘은 모두 감기로 며칠을 고생하고 있어 공기 질에 꽤 민감한 상태였는데, 이런 건 특히나 좋았다고 생각한다.

    굉장히 흔한 현미 녹차와 맥심 스틱 커피가 무료로 제공된다. 원가 절감은 좋은데 이건 좀 너무한 듯했다. 안 주면 안 줬다고 또 뭐라 할 수 있으니 그건 모르겠다. 어메니티는 충분하게 제공된다. 대실 제공을 안하는 '호텔'이기 때문에 그렇고 그런 물건들은 비치되어 있지 않고, 한 번 더 말하지만 매우 깨끗하다.

    침대에는 이탈리아 어딘가에서 수입해 온 매트리스를 썼다고 자부심 넘친 팻말에 이불 위에 놓여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이번에 100만 원 약간 넘게 주고 산 가장 낮은 등급 매트리스가 결합된 에이스침대만큼은 혹은 그 이상은 하는 것 같다. 편하게 잘 잤다. 스탠다드 룸이었는데 두 명이 자기에 가로 사이즈도 충분했다.

    깜찍한 냉장고 안에는 생수 500 ml짜리 두 병이 있었다. 유용하게 사용했다. 그렇게 대충 둘러보고 방을 나오니 6층에 정원이 있다는 층별 안내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갈 길이 바빠 가보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그렇다. 1층에서는 아침에 조식을 먹을 수 있다. 7시 30분부터 10시 30분까지인데, 닫는 시간에는 융통성이 있는 것 같았다. 다만 남은 음식의 양에는 융통성이 없으니 일찍 가면 좋다.

     

    이정민 작가의 작품. 제목이나 해설 같은 건 없었다.

     

    조금 뒹굴다 나오니 벌써 네시가 넘었다. 급히 찾아뒀던 빵집으로 간다. 대구에서 들를 베이커리가 상당히 많다. 먼저 르폴뒤 (Le Pouldu). 프랑스 지명 같은데 잘 모르겠다. 그런데 프랑스와 관련이 있는 것은 명백하다. 크루아상이 간판상품인데다, 프랑스 T55 밀가루를 쓴다고 여기저기 광고를 해놨다. 버터도 프랑스 AOP 인증을 받은 레스퀴르 (Lescure) 버터를 쓴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최고급 유제품에만 주는 이 인증마크는 버터의 경우 딱 원산지 세 지역에서 나온 것에만 붙여 준다. 이즈니, 샤헝트-푸아투, 브헤스. 레스퀴르는 세 번째 지역의 원재료를 사용해 만든 버터이다.

     

     

    르폴뒤
    대구 중구 동성로1길 26
    베이커리. 10:30-23:00. 휴무 없음.

     

    크루아상의 묘미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그 촉감과 고소함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몇 겹이느냐에 열을 올리는 사람도 많고 질리지 않은 단 맛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음식 맛을 표현하는 데에 그다지 일가견이 없는 나는 그저 입에 넣어볼 따름이다. 먹고 오길 잘 했다, 느꼈다. 내일도 와야지 다짐했지만 시간이 넉넉하지 못해 이루지는 못했다. 크루아상 두 개를 샀는데, 금방 다 먹었다. 큼직한데다 가격도 3,200원으로 저렴해 인기를 끌 만도 하다. 제일 중요한 맛이야 더 적을 이유가 없다. 맛있다.

     

     

    빵을 냠냠쩝쩝대며 더 남쪽으로 향한다. 내가 징징대서 겨우 가기로 한 우손 갤러리. 지름길로 간다고 생전 갈 일도 없을 것 같은 음침한 골목길들을 지나 간다. 열심히 걸어 도착한 곳엔 노출 콘크리트로 장엄하게 뒤덮인 꽤 큰 건물이 있다. 주변에 큰 건물이 없고, 근처 건물들이 쑥 들어가 있는 탓에 공간은 넓어 보이고 덕분에 이 화랑은 더 숨막히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문도 사랑스럽게 잘 어울린다. 웅장한 느낌을 주다 못해 열지 않을 것을 강요하는 듯한 분위기까지 주는 문을 열면, 큐레이터인지 직원인지 모를 한 분이 앉아 있다. 별 말은 하지 않는다. 바쁜 듯 일에 몰두한다. 우리는 우리 할 일에 몰두하면 되는 것이다.

    그리 해야 하건만, 어느덧 16시 40분. 지금 당장 17시 공연에 가도 모자랄 판국에 갤러리까지 들어와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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