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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수요음악회: Duo Ven돌아다니며 2020. 2. 7. 11:30
마티네
matinée. 프랑스어 matin이 여성명사화된 것으로, 접미사 ée를 보면 알 수 있다. 굉장히 자주 쓰이는 법칙으로, 리스트의 유명한 피아노 모음집 '순례의 해 (Années de pèlerinage)'에 나오는 'année' 또한 an이 여성명사화한 것이다. 역시나 여행 테마의 유명한 리스트의 곡 '빈에서의 밤 (Soirées de Vienne)'에서 찾을 수 있는 'Soirée'도 마찬가지 법칙이 쓰였다. 도시에서의 밤은 꽤 널리 쓰이는 테마이다. 풀랑의 피아노 모음곡 '나젤의 밤 (Les soirées de Nazelles)'도 그렇고. 1830년대 동시대 낭만주의 향취가 흠뻑 들어가 있는 클라라 비크 슈만의 '밤의 음악 (Soirées musicales)'도 같은 단어가 쓰였다.
그런데 왜 명사에 성이 있을까. 사회학적인 이유도, 언어학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일단 이 경우에 한해 간단히 요약하면 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는 아침과 저녁이란 말로 같이 해석될 수 있지만, 시점인가 기간인가에 따라 프랑스에서는 달리 분류된다. 그 분류를 '성'으로 한 셈이다. 프로그래밍으로 치면 의미 없이 flag를 하나 박아두는 것과 같다. 여기도 플래그를 쓰고 저기도 플래그를 쓴다. 이때 플래그에는 서로 다른 toggle이 들어 있다는 의미 외에 아무 뜻도 없다.
한국어나 우리의 판단 기준에 딱 시점과 기간이 나뉘지 않는, 혹은 다르게 이해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남성명사일 때 거의 시점으로 해석되곤 한다. "아침 11시에 음악을 듣는다." 이건 11시부터 듣기 시작한다는 의미이니 시점이다. "저녁 시간은 항상 음악을 듣는 데에 쓴다." 여기선 저녁 시간의 일부 혹은 전체 시간에 관한 말이니 기간이다. 각각 matin, soirée를 쓰는 게 옳다. 몇 가지 예외가 있지만 너무 이야기가 샌 것 같아 설명하지 않기로 한다.
프랑스어 마티네라는 말에 이렇게 두 가지 의미가 함축돼 있음을 우리는 위처럼 확인했다. 낮이라는 뜻, 기간이라는 뜻. '마티네 콘서트'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함축돼 있는데, 위와 같은 언어학적인 의미는 물론 두 가지 다른 의미가 또 들어가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첫 번째는 모든 마티네 콘서트가 클래식, 즉 고전음악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마티네 콘서트를 하면 십중팔구 아니 십 중 십은 클래식이 테마다. 곁들여 다른 걸 뭘 조금 할 수는 있는데 일단 틀부터 클래식 연주회이고, 출연진 또한 최소한 클래식에 한 다리 걸쳐 있다.
두 번째는 설명이나 해설이 첨가된다는 점이다. 연주를 하고 나서 다음 곡과의 사이에 설명을 해 준다. 대부분의 연주자들이 달변가의 역할까지 겸할 재능은 없는 관계로 관객이 노잼 하품 유도 설명을 듣거나 해설자가 따로 등장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클래식을 좋아하는 관객들은 아는 내용을 굳이 시간 들여 들어야만 하니 마티네 콘서트에 대한 선호도가 굉장히 낮은 경우가 있다. 반면 일반인들은 곡의 구조 해석 능력이나 작가의 표현을 이해할 수 있을 만한 경험이 전자 집단에 비해 차이 나므로 외재적 감상을 도와주는 기획 측의 해설은 상당한 도움이 된다. 비단 음악뿐 아니라 문학이나 미술 등 예술의 감투를 쓰고 있는 모든 것은 이러한 작품 외적 요인을 고려하는 시도가 유용하게 받아들여진다. 어떤 평론가들은 그런 것을 모두 배제하고 순수 작품만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데, 자신 생각 외의 것을 이질적으로 취급하는 그 생각의 방향성이 참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렇게 써놨지만 나는 마티네 콘서트를 이 두 번째 이유 때문에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Duo Ven
그런데 2월 5일 금정문화회관 소공연장에서 있었던 연주회는 마티네 콘서트 형식이었으며, 그럼에도 참 좋았다. 음악 그 자체도 좋았지만 해설자가 따로 없음에도 관객을 편안히 이끌며 유용한 정보도 관객층에 많이 전달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한다. 그러니까 고리탑탑하지 않고 처음 듣는 내용이 상당했다. 프로그램부터가 웬 듣보 투성이였으니까 해설이 없으면 당황스럽기 마련일 것이고, 그 해설 또한 처음 듣는 게 많으리라는 것은 자연스럽긴 하다.
프로그램 설명은 참 잘해주셨는데 왜 Duo Ven이 Duo Ven인지에 관한 설명은 그러고 보니 못 들은 듯 ㅋㅋ
금정문화회관 소공연장
부산 금정구 체육공원로 7
19:30-20:30Duo Ven의 첫 번째 무대
제712회 금정수요음악회- Ibert - 2 Interludes
- Foote - Sarabande and Rigaudon, Op.60
- Kuhlau - Trio for Piano and 2 Flutes in G major, Op.119
- Muczynski - Flute Sonata, Op.14
자끄 이베르는 어디서 이름을 들어 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떠오르는 곡은 없는데 이베르 하면 이름에 Jacques가 오는 게 왠지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거짓기억증후군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다음 작곡가를 보면 더 심각하다. Foote? 이러면 안 되지만 반사적으로 생각나는 단어는 참으로도…. 음악은 모르겠고 왜 저런 성이 존재하는지 그 연원을 추적하고 싶게끔 만든다. 일본이나 한국의 성은 어떤 지명이나 직업에서 유래되었는지 거의 그 근원을 알아낼 수 있다고 한다. 영미나 대륙 유럽 역시 비슷한 원리로 만들어졌으니 가능할 테지만 저것도 가능한가? 아무튼 그런 잡념만이 떠오른다. 하지만 나름 저명도 있는 작곡가로, 미국 동부 끝자락 뉴잉글랜드 지역의 다른 작곡가들과 묶여 Boston Six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중 유일하게 아는 작곡가는 에이미 비치 (Amy Beach)로, 비유명 작곡가답지 않게 정말 아름다운 실내악 작품을 여럿 남기고 있다.
Foote…에 비하면 쿨라우는 보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 익숙하다. 쿨라우에겐 미안하지만 쿨라우 '따위'도 좋은 곡을 만들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다. 우리에게 유명한 쿨라우는 역시 피아노 교본에 실리는 수많은 테크닉 연습용 허섭스레기 곡들의 작곡가이니깐. 하지만 위 곡 중 가장 선율적으로 소구력 있는 곡은 바로 쿨라우의 대트리오였다.
마지막 작곡가 묵진스키…? 무진스키? 아무튼 이 분이 사실 제일 난감하다. 가장 최근 작곡가이기도 하고 그만큼 곡도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다. 그도 이 사람 곡만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평했다. 나는 그가 잘 때 정말 재미있게 들었다. 재미보다는 손에 땀을 쥐며 그런 표현이 좀 더 어울릴까.
이 곡을 연주한 건 이번에 결성된 듀오인 Duo Ven이다. 부산시립교향악단 피아노 부수석으로 계신 이은정 씨와 플루티스트인 오신정 교수. 이은정 씨의 연주는 몇 번 들어 본 적 있는데 그때마다 감명받아 이번에도 오게 된 것이다. 이날 공연의 사회자이자 해설자로도 활약하신 이은정 피아니스트의 말에 따르면 거의 10년을 함께 연주해 왔다고 한다. 실제로 찾아보니 플루트 반주를 거의 항상 이 분이 도맡아 하신 것 같았다. 그러니까 정식 결성은 이번이라도 사실 수없이 많은 실연과 더 많은 연습을 겪은 셈이니 연주력이나 그 화합에 의문이 생기려야 생길 수가 없었다. 문제는 곡이었지.
프로그램 중 앞 곡은 각각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가 쓰이고, 마지막은 온전히 듀오 곡이다. 이게 또 참 좋은 구성이라고 생각했다. 듀오 곡의 위치도 그렇고 현악을 하나씩 배치해 들려주는 것도 예쁜 아이디어 같아 약간 감동. 그도 각각의 악기 소리를 하나씩 들어 볼 수 있다는 점을 참 좋아했다.
또 곡의 작곡 시기를 보면 쿨라우의 고전 형식 곡부터 무진스키의 1960년대까지 다채롭게 이루어져 있다. 이것 역시 관객이 반겨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원래 쿨라우의 작품은 내가 적어 둔 대로 두 플루트와 피아노가 합주하는 것이지만 아무래도 플루트-피아노 콤비이기 때문에 플루트 하나가 더 추가되는 원곡 대신 첼로가 등장하는 편곡판을 고른 듯했다. 플루트 음역이 워낙 높기 때문에 편곡판에서도 그와 엄청난 차이가 벌어지면 안 되는데, 그래서 첼로도 고음역대를 소화해야 한다. 첼로를 포함 찰현악기군 악기는 그 고유한 물리학적 특성 때문에 피치가 올라가면 포지셔닝 난이도 또한 정비례한다. 본인과 해설자 말에 따르면 '부단한 연습의 결과' 변은석 첼리스트가 훌륭히 연주해냈다. 고음을 잡으러 약지가 아래로 내려가 딱 그 부분을 캐치해낼 때 굉장히 요염해 보였다.
바이올린은 서은아 씨가, 비올라는 오은정 씨가 맡았는데, 오은정 씨는 이름에서 예상할 수 있듯 플루트의 오신정 씨와 자매 관계이다. 줄리어드와 함께 톱으로 먹어주는 RCM 출신으로, 주로 오케스트라에서 연주를 하고 있다.
이베르 & 푸트
이베르의 두 간주곡과 푸트의 사라방드와 리고동은 난생처음 보는 곡이라 집에서 반신욕하면서 나름 예습을 했는데 별로 감흥이 없었다. 연주의 문젠가 의심하고 유튜브에서 좀 시간을 투자해 비교했는데 영 신통치 않아서 그대로 관뒀다. 그래서 큰 기대도 없었고 호랑이에게도 별로니 안 자도록 조심하라고 헛소리를 하기도 했다.
막상 듣고 보니 아까 말이 헛소리가 되어 버린 탓에 당황스러웠다. 어 좋네? 유튜브 연주 탓이었군. 가장 크게 느껴지는 차이는 역시 바이올린이 주제를 모르고 나대다가 곡을 망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이다. 유튜브에서는 그랬고, 이 연주에서는 플루트를 받쳐주는 데에 주력했다. 플루트의 비브라토가 가장 아름답게 들린 곡이었는데, 자연스럽게 파동이 감쇠하도록 들리게 한 비브라토와, 음은 떨리는데 그 세기는 유지되도록 조정한 비브라토의 차이를 신경 써서 구사한 섬세함이 특히 좋았다.
푸트의 사라방드와 리고동은 비올라가 너무 균형감 있게 잘 받쳐준 탓에 오히려 비올라에 푹 빠져들었다. 황홀한 음색. 피아노와 플루트에 비해 작은 다이내믹으로 연주하면서 이렇게 집중하게 만들 줄이야. 곡도 이 비올라에 정말 잘 맞았다. 선율을 비올라가 받아 마무리할 때마다 너무 좋았다. 웬만한 곡은 페이지 터너 없이 엄청난 빠르기로 악보를 넘기는 피아니스트의 손놀림은 연주할 때의 손놀림만큼 대단했다. 리고동의 밝지만 어딘가 우울함이 서려 있는 느낌도 비올라는 잘 연주해냈다. 거의 넘어질 듯한 어딘가 불안정한 자세로 연주하셨는데 그와 반대로 비올라에서 흘러나오는 음렬은 탄탄했다. 선율이 플루트와 비올라가 따로 움직이는 때에도 조화롭게 들려서 좋았다.
쿨라우 & 무진스키
피아노가 확연히 돋보이기 시작하는 나머지 두 곡이다. 특히 쿨라우의 이곡은 청량감을 주는 터치가 마치 슈베르트를 떠올리게끔 한다. 이은정 피아니스트는 현대음악을 연주할 때도 조예가 깊다고 느끼지만 낭만주의 레퍼토리도 참 잘할 것 같다. 쿨라우의 이 트리오는 후기에 작곡된 작품으로 낭만주의 초입에 있으면서도 고전주의 색채도 남아 있어 그 공존미가 사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연주자들은 고통. 쿨라우가 비명횡사하고 나서 출판되었는데, 이런 좋은 작품이 더 많이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일찍 죽은 게 안타깝게 느껴졌다.무진스키의 소나타는 플루트와 피아노 모두 굉장한 난도를 자랑하는 현대음악이었는데, 끝없는 변박과 끝과 끝을 오가는 다이내믹 변화, 그리고 파워풀한 텅잉과 터치를 유지할 수 있는 지구력 모두를 검증하는 시험대이기도 했지만 그 예술성 또한 귀에 들어와 신기했다. 나도 예전엔 현대음악은 다 꺼렸던 적이 있었고, 루토스와프스키가 현악을 사용하는 방식 정도만 되어도 듣지 못하겠다고 도망갔는데 이제는 이런 음악도 귀에 익고 좋다고 느끼니 감회가 새롭다. 호랑이에게는 아직 익숙지 않고 다소 어려웠는지 꿀잠을 잤다.
이게 만 원이라니 금정수요음악회라는 기획과 연주자들에게, 그리고 예산 지원해준 지자체에 감사할 따름이다. 다음엔 목관악기와 협연할 또 새로운 (?) 현대음악 곡들을 찾아오겠다고 하는데 기대가 된다. 듀오 두 명 모두 현대음악을 참 포용하기 쉽게 연주해 주는 데다 새로운 곡을 발굴해내려는 열의도 장난이 아니다. 피아니스트 분은 사실 연습할 시간이 없어 고통에 힘들어하면서도 연습하러 가서 치는 것도 봐서 연주할 때 그 행복해하는 모습과 대비되어 참 흥미로웠다.
다 듣고는 칵테일 한잔 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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