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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여행, 그 두 번째 (01): 준비돌아다니며 2019. 11. 20. 00:52
첫 마디는 무심했다. “이거 들으러 갈래? 바쁘거나 안 내키면 나 혼자라도 가려고.” 잠시, 내가 왜 이런 말을 했는지 설명을 하겠다. 몇 번이고 그와 음악을 들으러 다녔지만, 가끔 조는 모습도 보였고 들으러 멀리까지 가는 게 부담도 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는 수험생. 그래서 수세적인 입장에서 표현한 것이다.
내가 들으러 가자던 것은 대구콘서트하우스 (Daegu Concert House)의 World Orchestra Series (2019 WOS) 기획 공연이었다. 말 그대로 세계 각국의 오케스트라를 초청하는 야심찬 기획. 부산에는 이런 게 없다. 홀이 워낙 차이나기도 하지만, 고전음악을 듣는 인구의 비율이 대구보다 못한 것일까 아무튼 그런 기획은 잘 하지 않는 듯하다. ‘챔버페스티벌’를 하더라도 대부분은 국내 아티스트들로, 심지어는 비슷한 주제로 하는 창원보다도 못한 감이 있다. 전체적으로 어딘가 못 미치는 부분이 있는 것이다.
9월 15일, 열심히 추린 결과 다음 여섯 가지가 남았다.
- 2019-10-11 19:30 뉴욕 클래시컬 플레이어스 (NYCP)
- 2019-10-26 17:00 무직콜레기움 빈터투어 (Musikkollegium Winterthur)
- 토마스 체트마이어 (Thomas Zehetmair), 미샤 마이스키 (Mischa Maisky)
- 2019-11-03 17:00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Wiener Philharmoniker)
- 안드레스 오로스코 에스트라다 (Andrés Orozco-Estrada), 예핌 브론프만 (Yefim Bronfman)
- 2019-11-12 19:30 야나첵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Janáček Philharmonic Ostrava)
- 레오스 스바로프스키 (Leos Svarovsky), 루카스 본드라첵 (Lukáš Vondráček)
- 2019-11-16 17:00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Trondheim Symfoniorkester)
- 장한나, 임동혁
- 2019-12-09 19:30 마린스키 오케스트라 (Mariinsky Orchestra)
- 발레리 게르기예프 (Valery Gergiev), 클라라 주미 강 (Clara-Jumi Kang)
그중 화요일과 일요일은 다음 날 서로 바쁜 것을 고려해 제외하면서 빈 필과 야나첵 필은 아웃. 빈 필은 그것을 감수하고도 생각해 보기로 했지만, 벌써 매진이었다! 젠장! 고르는 시점에서 너무 적은 시간이 남았던 NYCP는 그와 동시에 너무 레퍼토리가 별로라서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프렐류드와 바르톡 루마니아 민속무곡 빼고는) 아웃. 장한나가 사사한 미샤 마이스키를 들을 것인가, 장한나 지휘를 들을 것인가, 갓갓오케 마린스키를 영접하러 갈 것인가. 마린스키는 월요일이라 좀 힘들다는 결론, 최종적으로 마이스키랑 임동혁-장한나 사이에서 심대한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 호랑이가 유튜브에서 임동민의 알짜 강의 (?)로 음대생들이 탈탈 털리는 것을 보고는 임동혁-장한나 연주를 들으러 가기로 확정하게 된다. 노르웨이 오케스트라답게, 당연스럽게도 그리그가 있었는데 심지어는 프로그램 세 개 중 두 개가 그리그였다. 인터미션 이전을 그리그로 모조리 채워버리겠다는 것인가. 이러고서 못할 리가 없다. 사실 러시아 레퍼토리는 러시아 피아니스트가 잘 치고, 드뷔시는 프랑스 에스프리를 가진 프랑스 지휘자들한테 맡겨야 한다거나 하는 일종의 주술, 혹은 전통 같은 이상한 격언이 있다. 그런데 크게 틀린 말은 아니다. 각국의 관객들은 당연히 자국의 작품을 원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위에서의 압력이라는 것도 존재하니 결국 연주자나 오케스트라나 자국 작품을 일순위로 연주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유명하더라도 윤이상, 진은숙을 정기적으로 무대에 올려주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진은숙이 오케스트라에 여러 번 코멘트할 기회를 갖게 되는 것은 자연스럽게 한국 소재 오케스트라가 된다. 그처럼 정말로 노르웨이 작품은 노르웨이 오케스트라가 잘하게 된다. 심지어 트론헤임 심포니면 대표격이니 더 잘할 것이다.
티켓 오픈은 3일 14:00였는데, 나는 15일 밤에 정리를 했으니 좋은 자리는 잘 없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말은 그렇게 해놓고, 한 달여나 뒤인 10월 14일 오후에 예약을 했으니 자리가 거의 없었다. 다행히 2층 R석이 있어서 거기를 택하긴 했지만. 실제로 대구 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2층 D구역에 앉아 보니, 1열은 시야장애가 좀 있어 보였다. 2열은 거의 무리 없다고 봐도 된다.
대구콘서트하우스 그랜드홀
대구 중구 태평로 141
17:00-19:152019 WOS:
트론헤임 심포니 오케스트라- Grieg - Peer Gynt Suite No.1, Op.46
- Grieg - Piano Concerto in A minor, Op.16
- Tchaikovsky - "June: Barcarolle" in G minor, from The Seasons, Op.37a, TH.135
- Tchaikovsky - Symphony No.6 "Pathétique" in B minor, Op.74, TH.30
- Grieg -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 from Peer Gynt Suite No.1, Op.23 No.4
이렇게 공연 관람이 확정되니 그 뒤는 일사천리였다. 일사천리로 다른 모든 것을 예약하고 계획을 짜진 않았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처음에는 예전에 대구에 음악 들으러 갔던 것처럼 당일치기로 하려다 1박2일로 바꾸기로 했다. 그렇게 전보다 대구에서 무언가 다른 걸 할 시간이 많아지니 내실있게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먹을 것이나 둘러볼 것을 이리저리 찾게 된다.
먼저 찾은 것은 일단 먹을 것이다. 그가 트위터에서 찾은 리스트와 여러 맛집 빅데이터 어플리케이션, 그리고 카카오맵 데이터를 기반으로 일단 모조리 다 맵에 핀하고, 그중 신뢰할 만한 사람의 코멘트나 여러 의견이 겹치는 경우 따로 표기를 했다. 우리가 워낙 짧은 시간만을 대구에서 보낼 예정이었기에 모험보다는 안전한 쪽으로 선택했고 결국 수많은 핀들이 사후 평가를 요하는 상태로 남게 되었다.
숙박업소는 15곳 정도를 꼽아서 엑셀에 넣었지만, 새로 개업한 노블스테이 호텔이란 곳이 눈에 계속 밟혔는데, 그도 좋다고 해 여기로 결정했다. 대구는 전체적으로 갈 만한 호텔은 적고 모텔이 차라리 나은 동네였다는 게 중평이다. 수많은 이상한 호텔이 있었지만 엘디스 리젠트 호텔 본관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혹시라도 갈 사람은 잘 검색해보고, 되도록이면 신관을 예약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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